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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나쁘지 않아”가 편한 사람들

 

좋아하는 일이 없고 잘 하는 것도 모르겠으면 괜찮은 일, 나쁘지 않은 일을 찾는 건 어떨까? 호불호는 사람마다 표현과 크기가 다르다. 말이나 태도로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K는 재밌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물개박수를 치면서 “와, 진짜 재밌어요. 좋아요.”라고 한다. 하지만 표현을 잘 하지 않는 P는 약간 무덤덤한 표정으로 “음. 괜찮아요. 나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 일을 K가 P보다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좋아하는 일, 흥미는 주관적이어서 평상시 에 호불호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 P가 좋아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P는 각종 미디어, 강의, 진로프로그램에서 숱하게 듣는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라는 기준에 자신의 호불호가 못 미치는 것처럼 느껴져서 고민이 생긴다. P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모르겠어요. 저에게 좋아하는 일은 눈에 띄지 않아요.”라고 하소연한다. 친구들은 좋아하는 일들을 찾았고 그 일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자기는 아직 찾지 못해 뒤떨어진 것만 같아 불안하다. 평소의 반응 태도를 보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다. 강하게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좋아하는 건 분명히 있다.

 

역치라는 게 있는데 반응을 유도하는 최소한의 자극치를 말한다. 자극이 커질수록 반응의 크기도 커지는 것이 아니라 역치 이상이면 전부, 역치 이하이면 전무의 법칙을 따른다. 사람마다 역치가 다르기 때문에 주어진 자극에 대해 반응 여부도 다르다. 예를 들어 같은 강의를 들어도 느낌이나 감동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자극이 3이 되면 감동해도 어떤 사람은 5가 되어야 감동할 수 있다.

 

나는 진행한 프로그램이나 강의가 끝나면 ‘만족도조사’를 보며 복기를 한다. 만족도조사는 1점부터 5점까지 표시되어 있다. 1-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2 만족스럽지 않았다. 3 보통이다. 4 만족스럽다. 5 매우 만족스럽다. 라는 기준을 가졌다. 만족도조사표를 보면서 ‘이 때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할 걸 그랬어.’ ‘이 때 이렇게 했기 때문에 좋았어.’ 등의 생각을 한다. 참가자들이 작성한 ‘매우 만족스럽다’라는 평가 앞에서는 복기과정에서 소홀히 할 수 있지만 ‘보통이다’ 평가가 있으면 무엇이 ‘보통이다’ 평가를 만들었을지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더 잘 할 수 있을까, 잘 못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촘촘히 복기하게 된다. 내가 전문가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참가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기에 더 나은 내용과 방법으로 강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보통이다’가 소중하다.

 

그대가 ‘보통이다’ 과에 속한다면 나는 그대에게 감사하다. 사회는 그대처럼 신중한 사람으로 인해 정교하게 돌아간다. 나같은 ‘매우 만족이다’라고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면 사회는 활기찰 수는 있지만 반성과 정교함은 떨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다시 P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런 건 별로.” “음. 괜찮은 것 같아.” 로 표현하는 P.

감정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P가 좋아하는지 아닌지 차이를 못 느끼는 답변이겠지만 표현을 신중하게 하는 P는 매우 정확하게 표현한 부분이다.

P와 같은 사람은 일에 대한 선택지들 가운데 괜찮다고 여기는 것을 고르면 된다. 굳이 남들이 말하는 “좋아하는 것을 찾기”에 국한되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정도면 괜찮아”라는 활동을 찾아보는 거다. “나쁘지 않아”에 해당하는 일도 좋다. P는 사람마다 다른 역치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얼굴이 편안해졌다. ‘나쁘지 않은 일’을 하면 된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았다.

 

상담을 하다보면 P와 유사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원래 호불호 표현이 크지 않거나 다른 분야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한데 일에 있어서만은 분명하지 않고 고민을 토로한다. “좋아하는 일을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좋아하는 일’을 찾기가 전부는 아니에요. ‘괜찮은 일’을 찾거나 ’나쁘지 않은 일’이면 됩니다. 이 한마디에 쓴 뿌리를 씹고 있었던 것 같은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많이 봐왔다. 그대도 그렇다면? “괜찮아라고 말하는 걸 해도 나쁘지 않겠지?”

 

 

 

* 한참을

옆에서 듣고 있던 P의 후배가 말했다.

“선배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격하게 표현하잖아. 정말 맛있다~!!”이렇게.

“그건 그렇지.”

P는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뭘 좋아하는지 확실히 아는 미각이 부럽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일해서 번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을 만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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