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생각둥둥

유배자의 자유

생각굼터 2016. 11. 26. 00:27

어느 유배자의 자유

 

바쁜 일상가운데 "Stop!" 외치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다 내려놓고 머리를 비우고 싶은 날 어디론가 가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홀로 놉니다. 제가 임금이 되어 충신 '저'를 유배지로 보내는 겁니다.


나를 유배시키기는 의외로 쉽습니다

1단계 핸드폰을 끕니다

2단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잡일에 안녕을 고합니다

3단계 독립된 공간, 시간에 아무에게도 나의 위치를 알리지 않으며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합니다. 일이라면 음악듣기, 운동, 공부, 독서, 명상 등 혼자 해도 진행이 가능한 것이면 됩니다.

유배를 위해 지켜야 할 단계 중 어려운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1단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카카오톡이나 전화 등 누군가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폰을 끄기가 쉽지 않

습니다.


연락이 올 누군가가 없어도 자신이 하고 싶어서 전원버튼을 차마 누르지 못합니다. 진동이나 무음으로 해놓으면 안되겠냐고 하겠지만 끄지 않는 이상 연락이 오지는 않았을까 궁금증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영화나 연극을 볼 때는 걸려올 누군가를 신경 쓰지 못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니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고 딱 2시간만이라도 나를 유배시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에게 어려운 것은 2단계입니다. 1단계는 이미 책을 읽을 때나 강의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왔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2단계는 잡념이 많은 저에게 피하기 어려운 강적입니다. 몰입을 해버리면 잡념이 없고 3단계로 무사히 진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지 않거나 힘든 일이라면 이런 생각들이 툭 튀어나옵니다.

점심에 뭐 먹지?’, ‘0000부탁했는데 언제 하지?’ ‘남자 의사에게 침 맞기 싫은데 왜 하필이면 목요일이 담당여의사가 비번이지? 난 목요일이 제일 편한데.’ ‘, 피곤하다.’


게다가 컴퓨터 앞에서 작업 중이었으면 어느 순간 인터넷에서 눈을 반짝이며 연예계 기사들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하고 있던 일은 뒷전이 되고 맙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할 때 잡생각을 적는 메모지를 준비합니다. 유배에 방해되는 생각들이 떠오를 때 마다 메모지에 단어만 적습니다


'유배'가 끝나면 메모지를 들여다보고 정리합니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인터넷서핑을 허용하는 데드라인을 정하고 그 후에는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과 잡념에서 오롯한 시간을 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처럼 잡념이 많은 사람이나 핸드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은 자신을 유배시키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것을 시도해봤습니다지난 2개월간정확히 말하면 4개월간이요가족과는 함께 있었지만 주변 타인들과의 관계향상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습니다신도시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데다가 올해2월까지 직장에 다녀서 평일 낮 시간에 송도에 

있어본 적이 없어서 친구없이 혼자 지내야 했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홀로 시간을 갖기 쉽지 않았는데 퇴사 후 혼자가 되니까 좋았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가족이외에 마음이 맞는 엄마들 몇 명만 있으면 이곳에서 살기가 충분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게 되니 관계향상에 힘쓰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퇴사 후 재충전의 시간을 나의 성장을 위해 쓰고 싶었습니다.


학부모모임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만날 약속도 해보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누가 불러주면 가고 아니면 말고. 심지어는 불러주는데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저만의 골방에서 뒹굴며 놀았습니다. 골방은 집의 옷방입니다. 이전 집에는 옷방이 없었습니다. 이사 오면서 추가 공간이 생긴 것에 신이 났습니다


거울에 하고 싶은 일, 격려의 명언 등을 적은 포스트잍를 잔뜩 붙였습니다.


마음정화에 도움되는 사진과 가고 싶은 곳들을 찍은 사진들을 붙였습니다.


화장대 벽면에 읽고 싶은 책들과 참고할 책들을 채웠습니다. 한켠에 빈통을 만들어 각종 메모지와 볼펜을 두었습니다.

화장대를 서재로 꾸며놓았더니 매우 뿌듯했습니다


값비싼 브랜드 화장품 몇십만 몇백만원짜리를 가득채운 분의 마음도 저와 같겠지요.


옷장 문을 닫으면 고요한 느낌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 곳에 들어가면, 태아가 자궁 안에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요? 좋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대낮에도 그 안에서 놀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한밤중에도 무려 4시간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책읽고 글쓰기를 하느라 잠을 놓친 적도 있었습니다.


옷장 서재를 애용하기전에는 도서관을 다니면서 지냈습니다. 도보로 왕복 1시간~1시간 20분 거리였지만 운동삼아 다니니 좋았습니다. 힘차게 걷는 손끝으로 바람을 느끼며 타는 듯한 해를 이마와 마주하며 그렇게 다녔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야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후에는 오가는 횟수를 줄이고 조깅과 맨손체조로 활동을 대체했습니다

오가는 시간이 아깝기 시작했거든요. 왕복시간을 줄이면 책을 읽거나 쓰고 정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옷장 서재를 더 많이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2개월이 지났습니다.


마음이 풍요로워질 것을 기대했지만 머리만 풍요로워졌습니다. 동시에 몸이 지쳐갔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회사 다닐 때 보다 요즘 몸이 더 많이 아프다며 놀렸습니다. , 발이 저려서 침을 맞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목, 허리까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아픈 이유에는 첼로가 직접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지 4개월이 될 때였거든요. 첼로 레슨은 주1회이지만 거의 매일 1~2시간씩 연습을 꾸준히 했습니다


개인레슨이 아니다 보니 자세가 바르지 않다는 것을 지적 받지 못했는데 수개월이 지나서야 자세가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첼로 연주하는 자세가 좋지 않아서 몸이 아픈 것이 맞았지만 이보다는 심리적 이유가 큰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겁니다.


제 성향상 따로 또 같이를 매우 좋아하는데 따로는 너무 잘하고 있는데 같이를 전혀 하고 있지 않으니 뇌 어딘가 고장이 난 것 같았습니다. ‘진짜 나 찾기를 위해 시도한 유배가 몸균형 상실이 된 거죠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잠시 동안의 홀로 있기는 나를 성장시키지만 나의 성숙은 함께 있어야 가능함을 깨달았습니다.


대화하며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생각들을 받아들이면서 머리와 몸이 살아있도록 했습니다. 단순한 수다라도 좋으니 생활에 사람 온기가 있어야했습니다.


여기 까지의 글쓰기를 끝내고 동네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습니다.

얼마전에 여행 갔다온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차한잔해요.


이렇게 '따로 또 같이' 균형있게 살아야 겠습니다.

유배와 자유가 함께.


2016년 여름에 작성함- 

'생각둥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두 제자리?~모두 제자리!  (0) 2016.12.03
서촌에서 만난 장인정신  (0) 2016.11.25
신호등 앞에서  (0) 2016.11.02
조나단,그럴게요.'갈매기의 꿈'  (3) 2016.10.27
댓글